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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에드가 드가 Edgar De Gas, 진실의 아름다운 각색

에드가 드가 '자화상 Self Portrait' 1855년

 

 프랑스 출신의 화가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피어난 예술이 아니라는 이유로는 그의 예술이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드가의 작품 속에선 많은 고민과 연구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단순히 인상주의로 그의 작품들을 설명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그가 만들어낸 구도와 구조, 그리고 그가 담아내는 모델의 움직임은 보다 많은 것들을 얘기하고 있다.

 

에드가 드가 '벨렐리 가족 The Bellelli Family' 1860 - 1862년

 

 위 그림에선 고전주의, 사실주의 화풍과 색채가 잘 느껴진다. 그가 설정한 구조를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데 가족 4명 모두가 다른 동작과 행동을 취하고 있다. 부인은 허공을 쳐다보며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가 하면 남편은 검은 의자에 앉은 채 등을 돌리고 있다. 두 자매는 어디가 어색한 상태로 한 명은 부인과 함께, 한 명은 몸은 부인 쪽을 향하지만 얼굴은 남편 쪽을 향하고 있다. 당신은 이 가족에게서 어떤 느낌을 받을지 궁금하다.

 

에드가 드가 '실내 Interior' 1868 - 1869년

 

 제목이 ‘강간’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정확히는 ‘실내’이다. 드가는 진실을 교묘하게 꼬아놓는 걸 좋아했다. 자신이 그림을 통해 직설적으로 사실을 전달하기보다는 자신의 눈으로 봤던 장면을 조금 더 각색하기를 원했다. 그림을 보면 왼쪽의 여성과 오른쪽의 남성이 대조적으로 배치되어있다. 여성은 하얀 가운을 걸친 채 우울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있고 어두운 자켓을 입은 남성은 그런 여성을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남성의 그림자가 남성을 조금 더 거대해 보이는 효과를 주고 있다. 바닥과 침대에 옷과 침구류가 어질러져 있고 테이블 위에는 장신구가 놓여 있다. 왜 이 작품에 강간이라는 제목을 붙였는지 이해가 간다.

 

에드가 드가 '뉴올리언스의 목화 거래소 A Cotton Office in New Orleans' 1873년

 

 이 그림은 목화 거래소이다. 목화의 품질을 확인하는 사람, 신문을 읽는 사람, 벽에 기대어 쳐다보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 교류가 없고 독립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다. 일터에서의 분위기를 잘 담아낸 작품이다. 벽에 창을 통해 공간을 분리했고 그 속의 모습도 담아냈는데 그림이 보다 넓어 보이고 더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애쓴 느낌이 든다.

 

에드가 드가 '파리 오페라의 오케스트라 Orchestra of the Opera' 1870년

에드가 드가 '무대 위 발레 리허설 Stage Rehearsal' 1878 - 1879년

 

 70년대에는 발레 공연과 관련된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려내는 모델들의 동작들은 더 과감해졌고 역동적으로 변했다. 이 시기의 그림들에서 포커싱이 많이 보이는데 시선이 집중된 곳은 명확하게, 그렇지 않은 곳은 흐릿하게(의도적으로 과하게)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내 눈으로 직접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발레리나나 ‘실내’ 같은 작품들이 사회 고발성을 띄고 있다는 둥, 드가가 페미니스트라는 둥의 얘기가 많은데 그의 작품들이 어떤 식으로 변하는지, 어떤 부분에 중심을 두는지를 본다면 그가 작품 속에 그런 의미를 집어넣었다고는 딱히 생각되지 않는다. 단지 그는  데생을 좋아했고, 동작을 담아내는 걸 좋아했고 그렇기에 다양한 소재나 효과 등에 대해 연구했다고 본다. 물론 이건 나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에드가 드가 '페르난도 서커스의 라라 Miss La La at the Cirque Fernando' 1879년

 

 구도와 구성, 동작 연구가 극에 달한 작품이 이 ‘페르난도 서커스의 라라’ 작품이 아닌가 싶다. 그림 한가운데를 무용수가 힘껏 문 줄이 사선으로 이분할 하고 있다. 끈을 문 무용수 때문인지 줄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무용수는 평소에는 목격하기 힘든 고난도 자세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양팔은 앞뒤로 쭉 뻗은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끈을 물고 있는 동작에서도 마찬가지로 긴장감이 느껴진다. 위를 쳐다보는 듯한 각도,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천장, 무용수의 아찔한 동작이 실제 묘기를 보는 듯한 기분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그가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연구한 자료들(무대와 동작 관련된 스케치, 데생)을 보면 참 인상적이다. 인상파로 분류되는 드가이지만 그의 그림은 색채나 빛, 질감보다는 구도와 동작, 특히 사람의 동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에드가 드가 '무릎 꿇은 여인 Kneeling Woman' 1884년
에드가 드가 '머리를 빗는 여성 La Toilette (Woman Combing Her Hair)' 1884 - 1886년

 

 80년대에는 여성의 나체 그림을 많이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것 때문에 성도착증 관련된 소문이 돌았다. 필자는 인간의 본질적인 움직임의 모양을 더 자세히 포착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아무튼 이 시기에도 드가의 동작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었다. 초기와는 다르게 크고 과감한 동작들이 아닌 일상에서 마주 할 수 있는 기본적인 동작들이 많이 등장한다. 모델의 대부분이 나체로 등장해서 동작들이 한결 부드럽게 느껴진다.

 말년에는 지병으로 시력을 잃어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지만 조각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며 계속해서 동작과 관련된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에게 행동, 동작 하나하나는 무엇을 의미했을까? 그는 왜 그렇게 동작에 집착했을까? 무척이나 예민한 성격의 필자는 사람의 동작 속에서 많은 것을 보고 있다. 그저 단순히 목적을 위한 행위가 아닌, 그 사람의 성격, 기분, 당시의 상황 설명 등을 설명해주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드가의 눈에 들어온 사람들의 동작들은 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지 않았을까. 그의 그림이 우리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오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