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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에로스의 종말 AGONIE DES EROS

 과거에서 현대로 오면서 사랑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졌다. 진정성을 잃어갔고 사랑하는 타인의 존재는 점점 액세서리화 되어갔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타인이 더 이상 타인이 아니게 되었고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에 쉽게 노출되어 비교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타인의 존재보단 조건이 중요시 여겨지게 되었다. 과거에 사랑과 지금의 사랑이 과연 동일할까? 우리는 지금 '사랑'이라고 부르는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계속해서 '사랑'이라고 불러도 될까?

책 '에로스의 종말 AGONIE DES EROS'

 내가 한창 사랑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생각이 많아졌던 당시에 했던 생각들이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내 가치관, 연애관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변화에 큰 몫을 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책 '에로스의 종말'이다. 이 책은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하게 되었는데 제목에 너무 공감이 가서 책을 바로 집어 들었다. 정말 제목만 보고 매력을 느껴서 구매했기에 당시에는 이 책이 철학적인 책인지도 몰랐다. 이 책을 접할 즈음엔 나도 현대에서는 진정한 사랑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에로스의 종말'이라는 제목은 마치 내 생각에 동의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책 '에로스의 종말 AGONIE DES EROS' 사랑에 관한 나의 가치관도 이 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책 '에로스의 종말 AGONIE DES EROS' 재발명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사실 이 책을 난 3~5번 정도 읽었지만 80%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반 정도는 이해는 했으려나 의심도 든다. 아무튼 이 책은 사랑에 대해 철학적인 접근을 하기 때문에 무진장 어렵다. 철학의 '철'자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열심히 단어의 뜻과 관련 용어들을 찾아가며 읽어야 할 것이다.

책 '에로스의 종말 AGONIE DES EROS' 아토포스를 보니 한때 논란이 되었던 정유라의 오답이 떠오른다

 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한 내가 감히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을 말하자면, 사랑(에로스)은 타자의 존재가 있어야 가능한데 현대 사회는 타자의 경계가 무너져 모두가 동일자가 되어간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가치관이 형성되고 같은 법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예컨대, 모두가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고, 행복해지고 싶어 하고, 범죄는 기피하게 된다. 또 어떤 것이 유행하면 모두 유행을 따라가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인터넷, SNS 등을 통해 자기 스스로가 이미 많이 노출되어 있다. 더 이상 타자의 신비로움은 기대하기 힘들다. 내가 앞서 얘기한 비교에 관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의 존재가 어느 정도 드러나고 어느 정도 비슷하다면 이제 그 외의 조건들이 비교되는 것이다. 이게 현대 사회의 사랑의 모습이다.

책 '에로스의 종말 AGONIE DES EROS' 공감가는 글들이 많다

 현대 사회에서 사랑은 우정에 가깝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우정 또한 사랑과 비슷한 맥락으로 형태가 변하고 있지만). 나의 생각과 이 책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나도 내 의견이 틀렸다는 멋진 반론이 제기되었으면 좋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그런 기대는 하지 않게 되었다. 이 책은 내 의문에 마침표를 찍어 준 셈이다.

책 '에로스의 종말 AGONIE DES EROS' 영화 '멜랑콜리아'를 예로 들어 설명한 부분은 정말 좋았다

 가끔 친한 친구들이 연애하는 모습을 보면 한없이 슬퍼질 때가 있다. 연애를 마치 수학 문제 풀어 나가듯, 또는 로봇처럼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나에게 준다. 나의 이런 생각들을 친구에게 한 적이 있는데 아주 슬픈 대답이 돌아왔다. 요즘은 다 그렇다고. 에로스의 종말은 그저 철학이나 누군가의 견해가 아니라 진짜 우리 현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연애관과 가치관에 많은 혼란이 오거나 사랑에 대해서 회의감이 드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사랑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