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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La Boîte de Pandore 전생의 너와 나를 잇는 로맨스 판타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 La Boîte de Pandore'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 La Boîte de Pandore'

 나는 창작물을 굉장히 좋아한다. 영화, 책, 음악부터 시작해 게임까지 다양한 형태의 창작물을 접하려고 노력한다. 창작물들을 접할 때 창작자가 어떤 내용을 어떻게 표현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를 보고 느끼고 몸소 체험하면서 내 창의력, 상상력, 생각의 차원 등이 넓어짐을 느낄 수 있다. 특히나 소설은 상상력을 자극함에 있어서 아주 좋은 창작물 중 하나이다. 

 상상력과 소설. 이 두 단어로 떠오르는 소설가가 있다면 역시나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사람들에게 손꼽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의 데뷔작인 '개미'부터 시작해 '나무', '타나토노트' 등의 대표작은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신작 '기억 La Boîte de Pandore'이라는 작품이 출간되었단 소식을 듣고 한동안 손대지 않았던 소설을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 La Boîte de Pandore', 1권은 남성 모습의 표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 La Boîte de Pandore', 2권은 여성 모습의 표지

 기억, 뇌, 심리 등과 같은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나이가 들면서 소설에는 관심이 많이 줄어든 나지만 '기억'이라는 제목이 나의 흥미를 끌었다. 책을 읽어보고 '기억'보다 '전생'에 초점이 맞춰진 내용이라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책을 다 읽은 후 전체적으론 흥미로운 소재였다. 베르나르의 소설 '기억'은 주인공 르네가 최면사 오팔에게 우연히 경험하게 된 퇴행 체험을 계기로 전생의 자신을 하나 둘 찾아가며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담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 La Boîte de Pandore', 심층 기억

 주인공 르네는 퇴행 체험을 통해 내면에 잠들었던 심층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고 그러면서 111명의 전생의 나와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소설의 핵심 주제는 ''나'의 존재는 우연이 아니다.', 또는 운명론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베르나르는 전생의 나의 경험과 기억들이 모여서 현재의 내가 만들어졌다고 소설 속에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인 르네와 오팔이 함께 있는 이유 또한 그러함을 드러낸다. 사실 전생을 믿는 편이 아니어서 전생에 관련된 내용이 전개됨과 동시에 흥미가 조금 떨어졌다. 웹툰 작가 주호민이 전생을 안 믿는 이유를 아주 재치 있게 말한 게 떠오르기도 한다. 소설 속 등장하는 전생들은 받아들일 수 있을 법한 다양한 종류의 생이 등장하니 걱정하진 말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 La Boîte de Pandore', 아틀란티스

 그래도 베르나르의 상상력은 역시나 훌륭하다. 전생을 통해 알게 된 아틀란티스의 존재. 태초의 나였던 아틀란티스인 게브. 그와의 만남을 통해 변화한 삶의 목표. 이런 것들이 어우러지면서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책의 좋은 점은 책을 읽으며 내용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머릿속에선 그 내용이 그림으로 펼쳐진다. 창작물을 접하면서 동시에 나도 머리로 창작을 하는 셈이다. 내 머릿속으로 그려본 베르나르의 '기억'은 꽤 훌륭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 La Boîte de Pandore', 정말 공감 갔던 내용. 기억력이 좋으면 기억력이 나쁜 사람을 억지로 용서해야 한다

 아쉬운 부분도 많은 소설이었다.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느껴질 정도의 극적인, 급발진적 전개와 소설을 쓰다가 만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너무나 심하게 열린 결말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그래도 베르나르 특유의 소설 느낌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나쁘지 않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