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단순한 스토커에 관련된 영화라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줄거리나 제목, 포스터만 보고 이 영화가 꺼려졌을 것이다. 언더 유어 베드. 너의 침대 아래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말 그대로 남자가 한 여자를 쫓아 그녀의 집 침대 밑에까지 숨어 들어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름 돋는다' 또는 '역겹다'는 표현을 한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나도 그런 생각이 적진 않았지만 영화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 조금은 공포나 스릴러 같은 느낌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본 영화이다. 하지만 전혀 그런 영화는 아니었다.

내가 공포물이나 스릴러를 기대했던 이유는 이 영화의 감독 '아사토 마리'가 '주온', '령 : 저주받은 사진'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공포영화의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말을 덧붙이자면 감독 '아사토 마리'는 여자 감독이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감독은 '남자 X이코 XX끼 일 것이다'라는 추측을 많이 하는 것 같다만 그렇지 않다. 이 부분에선 나도 하나의 의문점이 든다. 왜 여자 감독이 굳이 불편한 사실을 들춰가며 영화화한 걸까? 그래서 나는 이 점을 신경 쓰면서 영화를 보았다.


사실 '언더 유어 베드'에서는 스토커라는 하나의 문제만을 다루진 않는다. 주인공 미츠이가 스토킹 하는 사사키는 결혼 후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다. 이를 미츠이의 눈과 귀를 통해서 우리는 아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미츠이는 사사키를 아주 애처롭게 바라본다. 나도 영화가 끝날 때쯤 느꼈지만 이 영화의 메인 스토리는 스토킹이 아니다. 막상 영화를 보면 스토킹을 큰 문제처럼 다루지 않는다. 사사키 또한 스토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만 오히려 자신을 구해달라고 할 뿐 그를 미워하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미츠이가 행하는 스토킹은 오히려 후반부에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추측이다만(억측일 수도 있다) 감독은 스토커를 통해 다루고 싶은 문제를 좀 더 가까이서 관찰하길 원했던 게 아닐까. 스토커는 그저 단순한 접근 방식에 지나지 않은 게 아닐까. 스토커 미츠이는 어쩌면 여성을 바라보는 감독 자신의 시각을 대변한 게 아닐까. 여기서 '왜 하필 스토커야?'라고 묻는다면 그건 나도 모른다. 나도 영화 속 스토커에 대한 너무 리얼한 표현 때문에 보는 내내 거부감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사키의 가정폭력, 미츠이의 독백과 과거 회상을 오가며 언급되는 존재의 의미, 관심의 부재 등이 영화에서 주된 문젯거리로 등장한다. 인간관계, 존재 가치, 관심과 죽음 등 사회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물고기나 벌레,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얘기한다. 어쩌면 스토킹은 감독의 진짜 의도를 숨기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다. 우리들이 마주하는 사회문제가 항상 겉으로만 보여지고 근본적인 문제들은 언제나 숨어있는 것처럼 말이다(억측 2).

이 영화의 평점, 리뷰 등을 보면 '스토킹을 사랑으로 포장해놓았다'는 글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내가 본 바로는 그런 건 전혀 아니었다. 미츠이의 스토킹 행위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범죄의 모습도 아니었을뿐더러 사사키에게 해를 가하려 하지도 않는다(영화 중간 자신 때문에 곤란에 처하는 사사키를 보며 눈물도 흘린다). 정작 사사키 본인도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입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내 눈에 보여진 주인공이자 스토커 미츠이는 사랑을 갈구한다기보다는 존재에 대한 의미를 찾고 있었다. 모두가 등한시하는 자신을 보고 유일하게 미소를 지어주었던 사사키에게서 그 희망을 본 게 아니었을까. 사사키와 미츠이가 대면하게 되는 장면에서 사사키는 그를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러자 미츠이는 모든 걸 그만두고 끝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가 경찰서에 자수를 하게 되는 장면에서 사사키는 끝내 미츠이를 기억해낸다. '미츠이 군'이라고 부르는 그녀의 외침에 미츠이는 눈물을 머금으며 영화는 끝난다.
독특한 소재에 독특한 표현방식의 영화였다. 누군가에겐 분명 그저 역겨운 스토킹물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최대한 감독의 의도나 생각을 파악하기 위해 주의 깊게 봤지만 정확하다곤 할 수 없다. 위에 글들은 그저 내가 느낀 감상이며 추측들이니 참고만 하길 바란다(비판도 좋지만 욕은 자제해주시길...). 공포, 스릴러물을 계속해서 해온 감독이라서 어쩌면 스토킹은 자신이 다루기 쉬운 소재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뭐, 어쨌거나 나쁘지 않은 영화였다. 나에겐 심심치 않은 여운을 남겼다. 다만, 다루는 소재들이 너무 강렬하기에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정확히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흐리멍덩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옛날에 일본인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한국 남성들은 자상해서 좋다는 얘기였다. 일본 남성들은 어떠하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돌아왔던 친구의 대답은 조금은 충격이었다. 일본 남성들은 우월주의가 강하고 한국 남성들처럼 자상하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진 이유는 폭력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일본의 상황이나 문화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이 영화를 보고는 가벼이 다룰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든 문제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은 바로 '관심'이 아닐까.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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