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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가수리뷰] 양준일, 시대를 앞서간 천재 아티스트

 처음에는 양준일이란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다. 비슷한 시기에 멜론 차트와 기사에 '양다일'이라는 가수가 이름을 올려서 그 둘을 헷갈렸었다. 가수 양준일을 제대로 알게 된 건 아마 두어 달 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유튜브에 알고리즘에 이끌려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중년의 가수가 나오길래 정말 놀랬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나는 가수 '양다일'과 헷갈려서 젊은 가수일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아차 싶었고, 이후로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에 대한 것들을 천천히 찾아보게 되었고 패션, 춤, 음악적으로 굉장히 시대를 앞서간 아티스트였단 걸 알게 되었다. 

양준일의 과거 다양한 패션들,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일단, 패션에서 말하자면 100점 만점에 100점을 주고 싶다. 양준일이 활동하던 시기가 90년대 초반이었는데(내가 태어날 즈음) 지금 그의 패션을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새하얀 피부에 꽃사슴 같은 외모도 패션을 돋보이게 하는데 한몫하고 있다. 흔히 우리가 양준일을 탑골 GD로 비교하곤 한다. 비교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뿐더러 과거 인터넷이나 폰, 컴퓨터가 발달하지 않았음을(패션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려웠음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더 대단하다고 해도 과찬이 아니다. 그가 미국에서 자란 것도 물론 패션 감각에(음악에도) 영향은 있었을 것이다. 미국의 자유분방함이 당시 양준일의 천재적인 감각에 날개를 펼쳐줬을지 모르나 90년대 당시 보수적이었던 한국에서는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었었나 보다. 그때 당시의 사람들 눈에는 그저 희한한 패션을 한 딴따라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더 놀라운 건 나이가 50이 되신 지금도 여전히 패션 스타일은 뛰어나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양준일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라는 상상을 한 번쯤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1집, 2집, 그리고 V2로 활동한 3집.

 그의 음악 또한 굉장히 진보적이었다. 특히 1집보다는 2집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1집 '겨울 나그네'는 이범희 작곡가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대중적인 발라드가 많이 수록되어있다. 직접 작사/작곡을 한 노래 'So Insane'에서만큼은 그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적 성향을 볼 수 있다. 곡 전체를 가성으로 불렀으며 한국 최초로 한글이 없는 노래였다. 2집에서 그의 이러한 음악적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2집도 이범희 프로듀서가 맡았지만 전곡을 미국에서 작업하며 본인만의 색이 강하게 묻어나는 앨범을 만들어 냈다. 미국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당시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디스코, 펑키, 레트로한 (뉴 잭 스윙)스타일의 곡들을 볼 수 있다. 가사 역시나 영어가 많이 들어갔다. 3집 Fantasy는 굉장히 오랜 공백기 이후에 나온 앨범인데 또 완전 달라진 음악 스타일을 가지고 나온다. 사실 우리에게는 제일 잘 알려진 노래가 바로 이 3집의 'Fantasy'가 아닐까 생각된다. 양준일의 다른 노래들은 전혀 몰랐으나 이 'Fantasy'만은 듣자마자 '아! 이 노래!'하고 기억이 났다. 3집은 1, 2집보다 훨씬 대중적인 음악들로 채워졌다. 수록곡 'Fantasy'는 당시 대세였던 테크노 댄스 장르이며 대부분의 수록곡도 대중적인 발라드와 댄스(테크노를 포함한 일렉트로니카) 장르로 채웠다. 하지만 3집에서도 가사만큼은 여전히 독특함을 띄고 있다. 

양준일(좌)과 '토요일 밤의 열기'의 존 트라볼타(우)

 양준일은 배철수의 Jam에 출연하여 자신의 춤 스승이 '존 트라볼타'라고 한 바 있다. 존 트라볼타의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에서 나온 그의 모습을 보고 아름다운 춤 선에 반해서 자신도 선에 집중하며 춤을 추게 되었다고 한다. 양준일의 예전 무대 영상들을 보면 확실히 춤 선이 이쁘다. 동작도 크고 시원시원하며 동시에 물 흐르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물론 지금 한국의 날고 기는 댄서들과 비교한다면 춤에 있어서는 대단치 않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 등을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 춤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졌더라도 한국의 마이클 잭슨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양준일(좌)과 프랭크 시나트라(우)

 그를 보고 있으면 마이클 잭슨, 지드래곤, 엘비스 프레슬리 등 다양한 아티스트가 생각나지만 나는 유독 '프랭크 시나트라'가 생각난다. 아무래도 서로 닮은 듯한 곱상한 외모 때문이라 생각된다(내 눈에는 정말 닮은 것 같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미국 흑백 음악의 결합체이자 최초의 팝 스타의 탄생을 알린 아티스트이다. 우리가 자주 보는 광고나 영화 음악에서 그의 음악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최근 영화 '조커'에서 그의 음악 'That's Life'가 사용되었다). 물론 프랭크 시나트라는 활동 당시의 인기가 어마어마했다. 그래서인지 양준일을 보면 더욱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지금이라도 양준일이 빛을 보게 되어서 너무나 다행이다.

 '성공은 운'이라는 신해철의 말이 새삼 생각난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자신이 노력을 열심히 한 들 운이 없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양준일은 운이 없었을 뿐이다. 어쩌면 그의 성공운은 50세에 터질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가 아쉽게 놓쳤던 천재 아티스트를 늦게나마 되찾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JTBC 뉴스룸에 나온 양준일의 인터뷰에서 양준일의 행복한 모습과 계속해서 감사하다는 그의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오래 기다려준 팬들과 늦게라도 용기를 가지고 돌아와 준 아티스트, 모두가 오래 행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