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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음악리뷰]라나 델 레이 Lana Del Rey 'Norman Fucking Rockwell!'

 근래에 내가 푹 빠진 가수가 있다. 라나 델 레이. 누군가가 나에게 음악을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LP바 같은 곳에서 신청곡을 받을 때, 잠시 음악에만 깊게 빠지고 싶을 때 나는 꼭 라나 델 레이의 노래를 골랐다. 내가 라나 델 레이를 알게 된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아티스트에게 푹 빠져버린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음악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 막 라나 델 레이의 'Norman Fucking Rockwell!' 앨범을 리뷰하기 위해서 노래들을 다시금 들어보는 와중에도 감탄의 연속이 계속되었다.

 

라나 델 레이 Lana Del Rey 'Norman Fucking Rockwell!'

 

 라나 델 레이는 '할리우드 새드코어'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장르를 만들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할리우드 새드코어'라는 단어의 선택은 탁월하다. 앨범 리뷰와 함께 좀 더 자세히 얘기를 하겠지만 그녀의 노래는 영화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기는 '새드팝'이다. 라나 델 레이의 이런 슬픈 분위기, 비관적인 태도의 노래들은 최근 가장 핫한 싱어송라이터인 빌리 아일리쉬의 음악에도 영향을 줬다고 한다(이번 앨범보다 이전의 라나 델 레이 앨범에서 빌리 아일리쉬의 느낌을 잘 느낄 수 있다). 이번 앨범 'Norman Fucking Rockwell!'은 특히나 이 '할리우드 새드코어'란 말이 어울리는 앨범 중 하나이다.

 

노먼 록웰 Norman Percevel Rockwell의 작품들

 

 앨범명인 'Norman Fucking Rockwell!'은 미국의 화가인 노먼 록웰(Norman Percevel Rockwell)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노먼 록웰은 미국인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한 화가 중 하나로 꼽히는데 미국 생활상의 건전하고 이상적인 모습, 낙천적인 경향이 많이 담긴 작품들을 그려왔다. 이는 이번 앨범의 라나 델 레이의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비관적인 태도와는 대조되는 모습을 보인다. 라나 델 레이는 이번 앨범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거짓된 모습, 거기에서 오는 회의감, 상실감 등을 노래하고 있다. 그래서 이 앨범의 첫 곡인 'Norman Fucking Rockwell'에서도 노먼 록웰을 '너의 시는 나쁘다', '빌어먹을 남자야' 등으로 비꼬듯 표현하고 있다. 그녀에게 노먼 록웰은 거짓말쟁이이자 자신을 더 우울하게 만드는 존재인 것이다. 노먼 록웰의 이름 사이에 넣은 'Fucking'은 그녀의 심정을 아주 잘 강조하고 있다.

 Sublime의 곡을 리메이크한 'Doin' Time'을 제외하면 이번 앨범 모든 곡이 라나 델 레이와 잭 안토노프(미국 가수 겸 작곡가, 프로듀서)의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앨범 수록곡들의 분위기나 사운드, 구성은 전체적으로 통일된 느낌이다. 아름다운 선율을 바탕으로 한 어쿠스틱하고 몽환적인 사운드, 그리고 거기에 조금씩 가미된 실험적인 리드, 일렉 기타 사운드와 전 앨범들보다 더 짙어진 앤티크/빈티지한 느낌, 그리고 라나 델 레이의 단단하면서도 여린 목소리가 이 앨범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사운드적인 측면을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대부분 어쿠스틱 악기가 사용되었고 리듬(드럼) 부분은 최소화되어있다. 모든 악기들이 어택이 강하지 않고 이큐잉으로 고음역대와 저음역대를 많이 죽여서(확실하진 않지만) 편하게 들을 수 있으며 라나 델 레이의 목소리와 가사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앨범을 듣다 보면 악기들과 라나 델 레이가 콜 앤 리스폰스 형식으로 주고받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악기와 보이스가 따로 놀지 않고 함께 어우러지는 느낌이었다. 이번 앨범이 두 사람 손에 의해서 얼마나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사운드를 강하지 않게 만든 이유를 꼽자면 앞서 언급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라나 델 레이의 보이스를 최대한 살리려 했을 것이다. 보이스 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에 인스트루멘탈, 사운드를 강하게 할 필요가 없고, 강하게 한다면 오히려 매력을 반감할 수도 있다. 두 번째로는 가사에 좀 더 집중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제일 처음에 말했던 음악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한 요소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가사일 것이다. 이번 앨범의 가사는 완성도가 매우 높다. 문학적인 요소가 많이 보인다. 매우 시적인 데다가 비유와 은유적인 표현으로 가득하고 함축적인 의미의 가사들이 많다(꼭 한번 가사의 의미를 찾아보면서 노래를 들어보길 바란다). 나는 음악 없이 가사만 읽어도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라나 델 레이는 글을 쓰는데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게 확실하다. 시집을 내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라나 델 레이 Lana Del Rey

 

 매력적인 보이스 아래로 치밀하게 만들어진 멜로디들이 흘러나오고, 시적인 가사는 아티스트에 의해 대화하는 듯이, 회고적으로 나긋하게 불려지고 있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는 꼭 눈을 감고 들어 보길 바란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한 여성이 현실을 마주하게 된 후 느끼는 상실감과 허탈함, 후회를 담은 영화 한 편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할리우드 새드코어'라는 장르를 제대로 만끽해보길 바란다.

 곡의 구성이나 사운드, 가사, 앨범이 담은 의미와 표현하는 방식 등 이렇게 완성도 높은 앨범이 그래미 어워드에서 상을 하나도 받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두 개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지만 두 부문 모두 빌리 아일리쉬가 수상하게 되었다. 빌리 아일리쉬의 행보나 업적 또한 대단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라나 델 레이의 'Norman Fucking Rockwell!'이 절대 밀릴 앨범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미가 세계적인 흥행성이나 영향력을 더 중요시했기에 나온 결과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물론 수상은 못했지만 라나 델 레이의 이번 앨범은 오랜 기간 우리 입에 오르내릴만한 명반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얼마 전 리뷰를 하면서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되기 쉽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나 트렌드에 섞이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관철하다 보면 고고해지는 순간도 오기 마련이다. 세계적인 트렌드를 주도하는 아티스트들이 주목받고 사랑받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들의 재능과 매력 또한 엄청나단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트렌드의 바탕에는 고전이 있고, 고전은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된다. 트렌드나 변화보단 고전을 선택한 그녀가 점점 고고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녀의 고고한 앨범을 앞으로도 더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앨범 수록곡 (보라색 : 타이틀,          : 추천곡)
01. Norman fucking Rockwell
02. Mariners Apartment Complex
03. Venice Bitch
04. Fuck it I love you
05. Doin' Time

06. Love Song
07. Cinnamon Girl
08. How to disappear
09. California
10. The Next Best American Record
11. The greatest
12. Bartender
13. Happiness is a butterfly
14. hope is a dangerous thing for a woman like me to have - but I have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