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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리뷰]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오랜만에 영화다운 영화를 보았다. 내가 이번 연도 통틀어서 보았던 영화, 보게 될 영화들 중에서 단연코 최고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바로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다. '로스트 인 더스트'의 장르는 범죄/드라마이다. 드라마성이 조금 더 강한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감독은 '데이빗 맥킨지'로 에쉬튼 커쳐의 'S러버', 이완 맥그리거와 에바 그린의 '퍼펙트 센스' 등의 영화를 만든 이력이 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영화 '아웃로 킹'에서 또 한번 '크리스 파인'(로스트 인 더스트 주연)과 호흡을 맞췄다. 사실 앞에 영화들 'S러버'나 '퍼펙트 센스'를 보고서는 '로스트 인 더스트'가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다(개인적으로 두 작품 모두 수작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감독의 경험이 점점 쌓이면서 일취월장하지 않았나 싶다. 과거에 '할람 포'라는 작품으로 영화음악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나 음악 선택은 탁월했다. 이는 나중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할 얘기가 무척 많다).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의 주요 내용은 권력자들에 의한 '탈취' 혹은 '착취'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유산인 농장을 지키기 위해서 두 형제가 은행을 털게 되고, 이를 두 경찰이 쫓게 되면서 벌어지는 추격전을 담고 있다. 사회고발성이 어느 정도 강한 영화로 비록 두 형제가 범죄를 저지르지만 이 범죄가 악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영화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포스터에 적힌 'Justice isn't a Crime(정의는 범죄가 아니다)'이라는 문구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3번의 이라크 파병을 갔지만 나같은 사람들을 위한 긴급구제는 없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는 비교와 대조의 연속이다. 두 형제 중 동생인 토비(크리스 파인)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모범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형인 태너(벤 포스터)는 충동적이고 감성적인 성격으로 돌발행동을 서슴지 않고 범죄 전적이 있는 전과자이다. 두 형제는 상반된 성격으로 은행털이 도중에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서로를 끔찍이 아낀다.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두 형제 중 형인 태너(벤 포스터)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두 형제 중 동생인 토비(크리스 파인)

 경찰팀도 비슷한 구성을 하고 있다. 선임 형사인 해밀턴(제프 브리지스)은 장난기가 많고 말장난을 좋아하지만 냉철하고 예리한 감을 가진 정년퇴직을 앞둔 베테랑 형사이다. 항상 후임을 괴롭히지만 츤데레처럼 그를 매우 아끼며 자신과 함께 해주는 것을 고마워한다. 후임인 알베르토(길 버밍햄)은 항상 해밀턴의 놀림거리가 되지만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며 은근히 그를 따라 하고 싶어 하는 인디언 출신 형사다. 이 둘도 항상 티격태격 하지만 서로를 굉장히 아끼는, 이미 오랜 우정을 쌓은 동료이자 친구이다.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형사 알베르토(길 버밍햄)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형사 해밀턴(제프 브리지스)

 형인 태너는 은행을 털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결말이 좋지 않을 거라는 걸 예감했다. 그는 너무도 아끼는 동생을 위해 기꺼이 부탁에 응했고, 그리고 동생을 위해 목숨까지 내던질 준비가 되어있다. 형사 쪽도 마찬가지이다. 선임 형사인 해밀턴은 정년퇴직은 물론 자신의 생 자체가 그리 오래 남지 않은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이 자신의 옆을 끝까지 지켜준 알베르토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굉장히 위험한 보직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옆을 지켜준 동료이기 때문이다.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서로를 너무도 아끼는 형제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텍사스의 이미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앞서 얘기했듯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은 '탈취'와 '착취'이다. 토비와 태너 형제는 어머니의 마지막 유산인 농장을 은행에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다. 그래서 결국은 은행을 털기로 결심한다. 은행의 만행으로 인해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 그들은 은행에게 빼앗긴 돈을 은행의 돈으로 채우는 것이다. 반대편 형사팀에서는 인디언의 이야기가 나온다. 인디언들은 과거 자신들의 땅을 빼앗긴 역사적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당했던 '탈취'와 '착취'가 현대에는 은행과 같은 형태로 이어져 왔음을 알베르토는 얘기한다.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나란히 앉은 두 형사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나란히 앉은 두 형제

 텍사스에 대한 배경을 조금 알고 영화를 보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될 듯하다. 영화에서는 인디언 소재를 잘 활용한다. 계속해서 인디언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빼앗김'에 대한 이미지를 아주 자연스럽게 조성한다. 텍사스, 인디언, 코만치, 석유 등 텍사스에 대해 조금 안다면 이런 부분들이 훨씬 영화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아무튼, 영화에서 텍사스는 예나 지금이나 '착취'의 땅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감독은 두 형제와 두 형사의 모습을 오가면서 역사적 아픔과 사회적 부조리를 잔잔하게 전달하고 있다. 서로 쫓고 쫓기는 입장이지만 그 입장을 잘 들여다보면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나는 텍사스 주민들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형 태너와 코만치족의 대립

 이 영화의 음악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영화 속에서 음악이 하는 역할을 매우 크다. 난 음악을 사용하지 않고 잘 만들어진 영화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영화 속에서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또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도 하며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주도한다. 가끔씩 영화가 음악으로 대표되기도 한다(레옹, 타이타닉, 라붐 등이 대표적).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속 음악 선택 역시 탁월하다. 텍사스 하면 역시 컨트리 음악이지 않겠는가. 머리에 멋진 모자를 쓴 카우보이들이 기타를 들고 컨트리 음악을 부르는 게 떠오른다. 영화에서도 역시나 텍사스 배경에 맞게 컨트리 음악들을 사용했다. 장면과 연출에 어울리는 적절한 음악들이 영화를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중간중간 무드를 조성할 때에는 짙은 스트링 사운드가 분위기를 잡아준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까지 음악이 함께 하는데 감독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조예가 깊음이 느껴졌다.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흠잡을 곳이 없었다. 젊은 크리스 파인부터 고령의 제프 브리지스까지 모두가 경력이 다분한 노련한 배우들이다. 특히 나는 제프 브리지스가 맡아 연기한 헤밀턴 역이 상당히 흥미롭고 인상 깊었다. 마지막 갈등이 극에 달할 때 보여준 그의 연기는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영화를 다 본 후에 상당한 여운이 남았다.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연기에 소름 끼쳤던 장면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이 장면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오프닝, 스토리 전개, 연출, 엔딩, 음악, 캐스팅까지 뭐 거의 모든 면에서 완벽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제목이 '로스트 인 더스트'로 바뀐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는데 이것도 썩 나쁘지 않은 제목이라 생각한다(영화를 잘 표현한 라임이다). 이런 영화들을 아주 가끔씩 마주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내용적인 부분으로는 '보니 앤 클라이드'가 떠올랐고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전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떠올랐다. 물론 이 영화는 두 영화가 가진 매력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영화라 말하고 싶다. 다만 뛰어난 작품성에 비해서 너무 많이 안 알려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리뷰를 본 누군가가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꼭 이 영화를 보길 바란다.

영화       :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장르       :    범죄, 드라마

감독       :    데이빗 맥킨지
출연       :    크리스 파인, 벤 포스터, 제프 브리지스 등
추천도    :    ★★★★★ 5점

한줄평    :    탈취와 착취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현대 서부극. 이런 게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