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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음악리뷰]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Tyler, The Creator 'IGOR'

 좋은 노래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면, 좋은 앨범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어렵다는 말로 묘사하기는 부족한 감이 있다. 노래가 하나의 요리라고 치면 앨범은 코스요리이다. 몇 가지 요리들로 구성할 것이며 어떤 요리들을 내놓을 것이며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이며 어떤 순서로 내놓을 것인지 등등 더욱 복잡하고 치밀한 작업이 요구된다.

 타일러의 이번 앨범은 매우 잘 만들어졌다. 앞서 얘기한 코스요리처럼 순서나 구성, 조화, 컨셉 등에서 매우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이전까지는 타일러의 앨범이나 노래를 들으면 ‘색깔이 독특한 래퍼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였지만 이번 앨범을 듣고는 타일러가 확실히 아티스트로서 자리를 잡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IGOR'

 네오소울, 힙합을 기반으로 한 이번 앨범 [IGOR]는 초창기에 보여준 낮은 톤과 거친 래핑 대신 부드러운 래핑, 감미로운 멜로디 등 전작 [Flower Boy]의 계보를 잇는 앨범이다. 총 6개의 곡을 타이틀로 내세우고 있는데 그만큼 앨범의 수록곡들의 완성도가 높다. Frank Ocean, ASAP Rocky, Pharrell Williams등의 엄청난 피쳐링진을 보유한 앨범이지만 피쳐링을 표하진 않았다. 노래와 앨범 자체에만 집중하길 바라는 의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번 앨범에선 IGOR라는 가상의 인격체를 통해서 경험한 사랑에 따른 심경의 변화를 서사적으로 앨범에 담아냈다. 우리나라 가수 딘의 앨범 ‘130 mood : TRBL’에서도 이런 내용구성을 보인 바가 있다(딘의 앨범은 시간의 역순 진행방식이었다).

 다운템포의 ‘IGOR’S THEME’로 시작하는 이번 앨범은 템포조절의 극치를 보여준다. ‘EARFQUAKE’에서 한층 더 느려진 템포는 진지한 사랑의 감정에 몰입하도록 도와준다. ‘I THINK’에선 사랑에 안절부절 못한 모습과 함께 다시 템포가 빨라지는가 하면, ‘A BOY IS A GUN’, ‘PUPPET’에선 다시금 느린 템포가 사랑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과 감정에 집중하게끔 한다. 빨라지는 템포와 함께 포효하는 듯한 래핑으로 폭발하는 감정을 표출하는 ‘WHAT’S GOOD’을 거쳐, 사랑이 식어 허무하고 씁쓸한 마음을 ‘ARE WE STILL FRIENDS?’라고 되물으며 잔잔한 멜로디와 함께 멋진 엔딩을 연출한다. 감정선에 따른 템포조절은 이 앨범에 좀 더 집중케 하며 듣는 내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또 하나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사운드다. 앨범을 듣기 시작하면 사운드에 매료된다. 귀에 꽂히는 전자음과 디스토션이 강하게 들어간 베이스, 서정적이면서 레트로 느낌의 멜로디 사운드들의 조합은 독특하지만 조화롭다. 타일러 특유의 변주도 매우 많다. 앞서 얘기한 템포조절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WHAT'S GOOD’ 과 같은 힙합 느낌이 강한 곡도 있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랩보다는 멜로디라인이 주를 이룬다. 앨범에 전반적으로 가스펠 요소도 많이 들어가 있어 더욱더 그러하다. 가스펠과 더불어 앨범 중간중간에 대사를 인용한 듯한 부분이 있는데 이런 장치들이 이번 앨범을 마치 한편의 고전 멜로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뮤직비디오에서도 고전 영화의 요소들, 레트로함이 상당 부분 드러나는데 이번 앨범의 컨셉과 기획의도라 봐도 무방하리라 생각된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IGOR' 뮤비

 가사도 볼만하다. ‘EARFQUAKE’에서 사랑에 빠진 감정을 지진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A BOY IS A GUN’에선 사랑의 위험함을 총에 빗대어 표현, ‘PUPPET’에선 사랑의 빠진 자신을 꼭두각시로 표현하고 있다. 비유적인 표현들, 시적인 표현들을 많이 볼 수 있으며 재밌는 표현도 많이 있다. 한 인터뷰에서 타일러가 가사에 신경을 안 쓰는 편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런 것치곤 꽤 훌륭하다.

 단순히 힙합앨범을 들으러 온 사람들에게 이 앨범은 난해할 수도 있다. 앞서 얘기했듯 변주가 너무 많고 전자음이 많이 들어있어서 그저 정신 사나운 음악이 되어버릴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다채로움과 개구쟁이 같은 느낌은 어설픈 난해함보다는 오히려 기교적으로, 특히 이번 앨범에서는 그렇게 다가온다. 타일러라는 아티스트의 특징이나 스타일이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그의 패션브랜드 ‘Golf Wang’에서 나타나는 스타일이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매우 유사하다). 타일러의 팬이라면 아티스트로서 발전적인 모습에 기쁠 것이고,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신선함에 놀라지 않을까 생각되는 이번 앨범이다. 다음 앨범에선 어떤 변화와 발전이 있을지 무척 기대된다.

앨범 수록곡 (보라색 : 타이틀,          : 추천곡)
01. IGOR'S THEME
02. EARFQUAKE
03. I THINK
04. EXACTLY WHAT YOU RUN FROM YOU END UP CHASING
05. RUNNING OUT OF TIME

06. NEW MAGIC WAND
07. A BOY IS A GUN
08. PUPPET
09. WHAT'S GOOD
10. GONE, GONE / THANK YOU
11. I DON'T LOVE YOU ANYMORE
12. ARE WE STILL FRIEN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