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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음악리뷰] (여자)아이들 (G)I-DLE '화(火花)'

(여자)아이들 (G)I-DLE '화(火花)'

 3세대 아이돌 중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는 걸그룹을 꼽자면 나는 두 팀을 선택한다. 블랙핑크와 (여자)아이들(이하 여자아이들). 블랙핑크는 YG의 아티스트 브랜딩의 끝판왕이라고 한다면, 여자아이들은 기획사 입장에서 앞으로 어떻게 신인 아티스트 개발에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여자아이들에겐 '콘셉트 장인'이라는 수식어도 붙는데 이번 앨범 '화(火花)'에서 그런 부분이 여실히 드러난다.

(여자)아이들 'I burn'

 이번 앨범은 앨범명 'I burn'에서 알 수 있듯이 'I am', 'I made', 'I trust'에 이은 'I' 시리즈 네 번째 앨범이다. 'I' 시리즈는 스토리가 이어지거나 콘셉트의 통일성 등은 없지만 시리즈 앨범들을 통해서 '나'를 정의해 간다는 점에서 의의를 둘 수 있다. 'I burn'은 데뷔 초 싱글이었던 '한(一)'과 스토리의 유사성을 두는데 '이별', '한' 등의 키워드를 이어간다.

(여자)아이들 '한(一)'
(여자)아이들 '한(一)', 당시에도 오리엔탈 느낌이 있었다

 이번 앨범 'I burn'의 타이틀곡은 '화(火花)'이다. 타이틀을 보면 불 火와花가 들어간 걸 볼 수 있는데 큰 스토리를 보면 이별한 여자의 성숙해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앨범 소개를 보면 '헤어짐의 아픔을 시린 겨울에 빗댄 ‘한(寒)’, 아픔을 태워버린 ‘불(火)’, 그리고 그 안에서 끝내 피워낸 ‘꽃(花)’까지, 앨범을 관통하는 키워드와 스토리를 비주얼 무드에 녹여 시각적인 즐거움을 더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데뷔 초 싱글인 '한(一)'을 크게 확장시킨 앨범이라는 생각도 든다.

 전체적인 콘셉트의 시각화는 '동양미'를 이용해 풀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뮤비 속 보이는 하얀 소복, 부채, 문양과 무늬 등이 동양적이면서 '이별', '한', '화' 등의 이미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자켓에도 나타나듯 타오르는 불과 화려한 꽃이 메타포로 사용되었는데 이 또한 뮤비와 안무를 통해서 잘 표현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천녀유혼'을 뮤비 레퍼런스로 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무에 속박된 모습이나 하얀 소복, 동양의 느낌, 스토리 등 많은 부분이 '쳔녀유혼'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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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火花)' 뮤직비디오 속 동양적 요소
메타포로 사용된 꽃
개화를 연상시키는 안무
불을 연상시키는 안무

 여자아이들의 앨범이라면 크레딧을 안 볼 수 없다. 총 6곡인 이번 앨범은 전체적으로 통일성이 좋다. 이별에서 극복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6곡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앨범의 시작인 '한(寒)'의 작곡에 안예은이 참여했다. '한(寒)'은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곡이라 말하고 싶다. 초반에 앨범 전체적인 분위기를 주도함과 동시에 강한 임팩트의 인트로를 제공해준다. 이 하나의 곡으로 인해 타이틀 '화(火花)'까지 부드럽게 연결되며 뒤에 '한(寒)'의 여운이 앨범 중반까지 이어진다. 안예은을 섭외한 것은 정말 좋은 판단이라 생각한다. 리더인 소연이 역시나 많은 곡 작업에 참여했다. 소연과 더불어 민니와 우기도 작곡에 이름을 올렸는데 이제는 아이돌에게도 음악적인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마무리와 함께 케이팝 음악에 대하여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진 웰메이드 앨범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역시나 케이팝(아이돌 문화)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손이 잘 가지 않는 앨범이다. 최근 엔터 산업 관련된 교육에 참여하면서 여러 가지 얘기도 많이 듣고 생각도 많이 해 볼 계기를 가졌다. 누군가는 케이팝이 점점 사람들의 생활 속에 스며들거라 말하지만 케이팝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와닿지 않는 얘기였다. 스며든다라 하면 케이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라도 그들의 노래가 들려와야 하는 것 아닐까. 가령, 카밀라 카베요의 'Havana'라던지, 마크 론슨(브루노 마스)의 'Uptown Funk' 같은 노래는 우리가 굳이 찾지 않더라도 우리 귀에 들어오게 된다. 이런 게 진짜 생활 속으로 스며들며 침투하는 게 아닐까. 음악이란 콘텐츠는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잘 만든 음악 콘텐츠는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귀로 기억하게 된다. 하지만 나에게서 케이팝은 점점 멀어지는 중이다.

 케이팝 산업은 대중적인 것을 벗어나 오히려 매니아틱한 움직임을 가져가고 있다. 음악 콘텐츠가 가지는 장점 대신 비주얼적인 것을 택했다. 음악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지 않고 내세우는 아티스트의 외모를 어필한다. 팬덤 사이에서 어떻게든 돈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어 팬들과 소통이라는 명목 아래 소비를 유도한다. 음악은 마치 그들의 외모를 뒷받침해줄 도구로 전락하는 느낌이다. 위에서 리뷰한 여자아이들만 봐도 그들을 '콘셉트 장인'이라 부른다. 아이돌이 노래로 회자되는 일이 점점 적어진다. 1, 2세대 아이돌까지만 하더라도 그렇지는 않았다. H.O.T.의 '행복', god의 '어머님께', 빅뱅의 '거짓말'이나 소녀시대 'Gee', 원더걸스의 'Tell Me' 등은 전 국민이 다 알만한 노래였다. 옛날엔 아이돌이 방송 프로에 게스트로 나오면 유재석 님이 신나서 따라 부르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그런 모습도 점점 찾아보기가 힘들다. 아이돌이 홍보차 방송에 나오면 다들 아는 척하기 바쁘다. 음악 콘텐츠가 갈수록 많아져서 따라가기 힘든 이유도 물론 있겠지만 그게 핵심이 아니다. 비주얼로 승부하려는 엔터사에선 최대한 많은 멤버를 모으려 하고 그러다 보니 파트 분배가 난잡해지며, 실력보단 외모를 우선시하니 노래 선택의 폭도 좁아지고 노래 대신 사운드로 대체한다. 대중의 귀에 흘러 들어갈 기회가 작아질 수밖에 없다. 만약 흘러 들어가더라도 그 음악은 기억되지 못한다. 최근에 샤이니가 오랜만에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예전에 샤이니 특유의 유로팝스러운 느낌을 굉장히 좋아했었는데 이번 앨범을 들어보니 마치 엑소의 노래를 듣는 것 같았다. 어느 하나가 돈이 되는 트렌드다 싶으면 그걸 따라가기 바쁘다. 요즘 엔터 산업 전체가 이렇다. 교육에 참여하며 만난 사람들과 얘기를 해봐도 다들 어떻게 해야 돈을 벌지에 대한 궁리만 늘어놓지 어떻게 해야 좋은 음악을 만들지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케이팝도 음악이다. 물론 케이팝이 만들어 온 문화는 대단한 업적이다. 하지만 그렇게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멤버들 간의 불화, 점점 수면 위로 올라오는 부적응 행동, 과거에 행적에 붙잡히는 모습들이 음악이 아닌 다른 곳에 승부처를 둔 부작용이다. 질 높은 음악 콘텐츠는 결국 빛을 본다. 어떻게 해야 좋은 음악을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 다른 콘텐츠를 하지 말란 얘기가 아니다. 중심은 음악이 되어야 한다. 아이돌 문화가 건강하고 진정한 의미의 대중문화로 자리잡길 바란다.